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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러길 바랐지만... 뜻대로 잘 되질 않네." 그렇게 혼자서라도 완벽하게 머물고 싶었다고. 굳이 당신에게 할 말은 아니었기에 나는 뒷말은 삼키고 말았다. 삼키는 것이 나았다. 뱉었던 말 그대로 나는 그 뜻대로 되지 않았으니까. 나는 완벽하게 변하지 않겠다는 목표에서 이미 멀리 떠나버린 지 오래다. 자신이 틀렸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던 내게, 이 상황이 잔인할 정도로 내게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나도 당신의 말처럼 변해야만 하는 걸까. " ...역시 변해야만 하는 거겠지. " 그렇다면 어떻게. 넥타이가 묶여지는 것을 가만 바라본다. 이전에 누군가 내게 넥타이를 지적하거나 제대로 고쳐주려고 했다면 나는 항상 그 반대로 넥타이를 빼 버리거나 웃으며 무시하곤 했다. 그가 살아있었을 때도 그러했지..
엿새, 창가에 앉아 하늘만 바라본다. 너무 지쳤다. 나뿐만이 아닌 모두가. 주위는 조용하다. 드문드문 안부를 묻거나 자고 온다는 아이들의 목소리만 들릴 뿐이다. 내일이면 이제 끝일까. 하늘에 가득 낀 안개처럼 내일이 예상되지 않는다. 아니, 오늘조차 예상할 수 없다.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일 뿐. 정신이 지친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슬픈 것도 어느 순간부터 익숙해지는 것일까. 과연 그럴까. 그럴 수 있을 리가. 구겨진 양피지를 손에 쥔 채 시계탑으로 향한다. 바람이 점점 차가워진다. 몸이 떨리는 것도 같은데.. 분명 추위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결국 이곳을 혼자 오는구나. 이제 앞으로 이곳에 올 일은 없을 것이다. 이곳에 또 온다면 계속 너를 지울 수 없을 테니까. 손에 쥔 구겨진 양피지 조각을..
닷새, 피곤함에 기숙사 침대 위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 이곳에서 잠들고 싶지 않았지만 혼자 편히 자신을 숨기에는 이곳만큼 적당한 곳이 없었으니. 위로를 건네줄 수 없는 꼴로 다른 이의 위로를 받고 싶지 않았다. ... 사실, 그들의 다정이 무섭다. 아무에게도 기대거나 기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정신을 잃은 것처럼 잠에 든다. 오늘은... 오늘은 생각보다 괴로워서. 그대로 얼마나 눈을 감았는지 모른다. 다행히도 악몽은 없었지만... 하하, 그렇겠지. 왜냐하면 지금이 악몽이나 다를 바가 없으니. 여기서 얼마나 더 최악으로 치닫겠는가. 일어나니 손에 무언가 쥐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구겨진 하얀 쪽지일 줄알았다. ...손을 펴보면 그것은 첫날 내 이름을 새긴 양피지. 찢어지고 구겨져 내 손안에 쥐어진 내 ..
나흘, 겨우 나흘이었다. 일주일은 지난 기분이었고, 그 일주일 동안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한 것 같은데.. 시간은 아직 나흘이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이제 반밖에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직 반밖에 오지 않았는데 나는 지금 어디까지 내려 쳐진 것일까.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자면 만사에 원망이 서렸다. 왜 내가 여기서 버티고 있어야 하는지. 왜 내가 이 감정까지 책임져야 하는지. 왜 내가 이 무력감을 감당해야 하는지. 왜? 왜, 왜. 이 뒤에는 분명 벽인데 왜 절벽 위에 놓인 기분일까. 혼란 속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침묵을 지킨 채 모래가 흘러내려 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뿐. 내가 이 상황을 이해하는 것도 허락이 될까. 이해가 시작되면 내 주장이 나오기 마련이다. 더 무력할 것이다. ..
사흘, 시간이 속절없이 흐른다. 모래시계의 모래가 떨어지는 것처럼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별것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흐른다. 언제까지, 어디까지 이렇게 흘러내리기만 할까. 그 어디에 있어도 나를 감싸는 공기가 무겁다. 사념을 떨쳐내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 예상했던 것보다 무게가 상당하다. 여태까지 배웠던 모든 것들이 쓸모없게 느껴진다. 정을 주는 것조차 부질없게 느껴진다. 지는 꽃을 바라보며 기이한 이기심마저 든다. 지금 흔들리면 되돌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내 전부를 흔든다. 전부 웃기지도 않는 소릴. 받아치지 못할 다정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 다정의 뒤에는 항상 다른 진심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항상 가장 많이 사랑받았으며, 가장 가까운 이에게 미움받는 것에 능숙했으나. 내..
이틀,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한 밤이었다. 이런 적막은 현실감이 없다. 그 감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 손에 쥐여진 하얀 쪽지의 이 글씨가 어찌나 뚜렷이 보이던지. 남몰래 구겨서 버리기도 했지만 계속 생각을 되풀이해봐도 이건 내 몫이었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오히려 그 이유조차 내가 직접 찾아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가끔 내가 책임져야 할 일들이 내가 상상해보지 못한, 내가 인식하지 못한 무의식 속에서 그 원인이 발견될 때가 많았다. 그러니 이 쪽지가 내게 온 것도 어쩌면 내가 모르는 나의 무언가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받아들이면 생각이 한결 가벼워진다. 이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이런 자리야 한두 번 앉는 것도 아니었으니 당장은 괜찮았다. 정확히는 괜찮아야 했..
하루, 늑대 울음소리가 들려왔을 때부터 그 소문이 그저 떠도는 다른 이야기들과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거짓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곧 씨가 된다고 했던가. 갑자기 이곳은 변했고, 우리는 갇혔다. 마치 그곳에 가기 전, 예행연습이라도 하듯이. 처음엔 당황스럽고 불쾌하기까지 하였으나 내 정신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또렷해진다. 당장 위협이 되는 것은 없었고 그 위협이 닥치더라도 어차피 죽을뻔한 것도 처음도 아니지 않은가. 다시 눈을 감고 잠에 들었다 깨어나도 상황은 여전했다. 여전히 밖으로는 나갈 수 없었고, 여전히 교내에는 우리들뿐이었다. 우리들만 있었다. 내 머리 위는 비어있었으나, 고요하고 무거운 공기가 머리끝부터 나를 짓누른다. ...언제는 또 안 그랬던가? 새삼스럽게. 연회장 벽에 ..